방명록



최근의 몇 가지 이야기



 


  1.

  오늘 아침, 넷북을 샀다.

 


  넷북을 본 같은 사무실의 T가 말했다(T는 요새 운동을 하며, 열심히 몸을 만드는 중이다).

  T : 오, 예쁘다. 부럽다. 들고다니면 멋질 것 같아!
  나 : 하지만 넌 맥북 에어를 쓰고 있잖아!
  T : 하지만 난 들고다닐 수 없는 걸. 뱃살을 빼기 전까지는.
  나 : 왜? 맥이랑 배랑 무슨 상관이야?
  T : 날렵하고 멋진 남자가 맥북 에어를 쓰면 폼나는 아이템이지만, 배나온 사람이 맥북을 쓰면 오타쿠로 보이거든.





  2.

  어제는 검은호수님, 오늘은 우주정복자를 만났다.

  올해 만우절(정말 정확히 4월 1일)부터 접하기 시작한 嵐는 내 인생 최장 팬질(무려 8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와중의 소득은 검은호수님과 우주정복자에게 전파한 것. 간단한 이윤데, 같이 수다떨 거리가 생겨서 좋다.

  아무튼 어제 만난 검은호수님(초딩+천재 취향, 전 담당은 TVXQ의 X군)은 최근 빠진 이 영상을 보여주었다.
  늪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돌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영상'

  귀여운 척의 신기원을 달리는데,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어울린다는 것이 포인트.



  저게 아마 작년 영상일텐데, 저기서 춤추는 남자는 1983년생. 한국 나이로 스물 여섯 아냐?
  아무튼, 저 영상에 빠진 검은호수님은 무려 핸드폰에 리핑해서 넣고 다니면서 아침저녁 감상한다고.



  오늘 만난 우주정복자와 나이가 드는 것, 나이값, 어려보이고 나이들어 보이는 외모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저 영상이 생각났다. 그래서 아라시의 영상을 보면 (웃겨서) 빵빵 터지는 우주정복자에게 넷북으로 저 영상을 찾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우주정복자 : 악! 귀여운 척! 근데 어울려. 저런 게 아이돌이지!
  나 : 만약 내가 네 앞에서, 저 노래 부르면서 쟤처럼 귀엽게 춤추면, 죽일거야?
  우주정복자 :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못 춰.

  아, 시크하셔라.





  3.

  얼마 전, 그리 춥지 않았던 무렵. 메신저 대화의 일부분.

   once in a blue moon 님의 말 :
나는 눈이 없이
피부로 세상을 감각하므로

  말라 님의 말 :
합리화임

   once in a blue moon 님의 말 :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재구성하려고 해도, 결국 지나온 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거지

  말라 님의 말 :
언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자기가 자기 일을 이성적으로 설명을 못하는 상태를 보통 멍청하다고 하는 거 아닌가





4.

  S군과의 대화.

  S : 앗싸 드디어 아이폰 나온다!
  나 : 너 핸드폰 바꾼지 얼마 안된 거 아니었어?
  S : 응. 아니라도 아이폰으로 바꿀 생각 없어.
  나 : 근데 왜그렇게 좋아해?
  S : 애플빠들이 (아이폰 사면) 중고 아이팟 터치 똥값에 내놓을 것 아냐! 그거 사려고.


  다른 이야기하다가, 또 S군과의 대화.

  S : 너 아이폰 살거야?
  나 : 그럴까 하는데, 너무 비싸기도 하고 블랙베리화이트도 끌리고.
  S : 살거면 3개월만 기다려. 어떻게 해도 요금제가 너무 비싸고... 아무튼 초반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사고 나면 살 사람은 얼마 안될거니까, 삼개월 지나면 이것도 공짜폰 나온다.
  나 : 안나오면?
  S : 아이폰 출시에 긴장한 삼성에서 엄청 싼 값으로 스마트폰을 내놓겠지.

  *. 실제로 삼성은 옴니아 시리즈의 가격을 굉장히 많이 내렸다.





  5.

  십년 가까이 친하게 지내고, 심지어 외국에 나간 8개월까지 붙어 있었던 나와 우주정복자. 워낙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얘기가 많다보니 말이 점점 짧아진다. 예를 들어, 우주정복자가 이런 농담을 할 때.

  우주정복자 : 왜. 나처럼 편한 인상의 사람이 어딨다고. (우주정복자는 절대로 상냥한 인상으로 보이지 않으며 웃으면 비웃냐, 무표정하면 불만있냐 소리를 듣는다.)
  나 :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해? 네가 어딜 봐서 상냥하냐....는 말 등은 생략하자)입아파.


  나 : 아무래도 나는 너무 평범한 것 같아.
  우주정복자 : 입아파.

  같은 식. 입아파 뒤에 생략된 말은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식으로, 되풀이되는 말들이 좀 있다. 게으른 것으로 따지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두 사람은 묘안을 냈다.

  나 : 이제부터 숫자로 말하자. '입아파'라고 하고 싶으면 1번.




  그런 식으로, '입아파'는 1번, '그 옷 빨리 안벗어?(옷이 심하게 안어울릴 때)'는 5번, '메뉴 그냥 네가 골라'는 7번 등으로 번호를 매기고 있다. 나와 우주정복자의 예상도는 다음과 같다.

  마흔이 된 나와 우주정복자가 나란히 앉아있다.

  우주정복자 : 5.
  나 : 7?
  우주정복자 : 5.
  나 : 14.

  두 사람, 웃는다.

  무슨 부조리극도 아니고.




  +

  이건 좀 엄선한 천잰데 시리즈.
  이 다섯 개 에피소드 모두가 웃겼다면 아마 넷 중 하나일 것이다.

  1. 우주정복자나 늪님이나 S나 말라
  2. 혹은 1번 사람 중 1명 이상을 아는 내 지인
  3. 이 블로그를 엄청 오래 본 사람
  4. 1, 2, 3번이 아닌데도 웃겼다면 당신도 천재!




근황





  생각하는 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이 다만 일기장에 넣고 자물쇠에 채워, 나 자신밖에 볼 수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글은 생각이나 말과 달리 휘발되지 않고 남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내 의도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몇 마디 단어 선택이나 어미 정도. 혹은 그 맥락이나.
  이모티콘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타인에게 적의가 없다거나 이 글이 농담이라는 뉘앙스를 띄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책임질 부분이 줄어든다는 의미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한다. 몇 년 전 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것처럼 '무지를 위장하지 않겠다'는 맥락에서다. 어쨌든 지금 하는 일도 글로 소통하는 부분이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형태로 살아도 문장과 떨어져서 살거나 생각할 수 없다. 여전히 생각한 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쓴다. 그 과정에서 불분명한 이미지와 추상들로 차 있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지점을 기록할 수 있어서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뭔 소리를 하는지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블로그를 지속하고, 계속 긴 글을 풀어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최소한 내 블로그를 링크하거나 즐겨찾기하거나 가끔 들어오는 사람들 중 몇에게는 이 글이 전달되리라고 믿는다. 모든 사람과의 소통은 꿈꾸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릴 때도 알았다. 다만, 삶의 어느 지점이 비슷하거나 욕망의 맨 얼굴을 말끄러미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 글 중 어떤 문장이 닿으리라고 믿는다. 종교와도 비슷한 믿음- 그냥 막연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닿았으면 좋겠다.


  상상한 적은 없다. 어떤 기분으로 이 글을 읽고, 내 블로그를 읽으며, 내가 쓴 다른 글을 읽을까? 그걸 쉽게 상상하거나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라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는 숨쉬는 것과 같지만, 타인에게도 그렇지는 않을 테니까.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고, 미진하기에 되풀이해 쓰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확실히 체화하지 못해서다. 여전히 나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구르고, 때로는 그냥 내가 다 나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가끔은 타인이 우습기도 하고, 타인의 눈에 내가 우스워보이리라는 생각도 한다. 바쁘게 산다. 별일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딱히 이런 일이 있다고 말하기도 뭣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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